25장~30장은 사울의 몰락과 도피 중인 다윗의 이야기들이 겹쳐집니다. 사울과 다윗에게 공통적인 사건들이 여럿 있는데, 이번 주에 읽은 부분에서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난 주에 읽었던 15장에는 사울에게는 사무엘을 통해 내려온 하나님의 명령을 2% 다르게 수행하는 바람에 그의 왕위가 하나님께로 버림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울은 -자기 말로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좋은 양과 소들을 죽이지 않고 챙겨왔다가 사무엘에게 크게 혼이 납니다. 비록 사울이 바로 회개했다고는 하나,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셨고 그 이후 사울은 쭉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그런데 30장에선 다윗이 아말렉을 추격하여 물리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아각 왕까지 포로로 잡아온 사울에 비해, 다윗 일행은 그렇게 포스가 대단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승리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불씨가 될 수도 있는 400여명의 젊은 아말렉 청년들은 놓치고 맙니다. 대신 전리품은 원래 빼앗겼던 것보다 더 잔뜩 챙겨왔습니다. 전리품을 나누는데도내부에서 약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조금 우스운 것은 이 전리품들을 유다 족속의 각 성읍장로들에게 선물(뇌물?)의 명목으로 보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사울이 전사하고, 유다족속에서 먼저 다윗을 유다의 왕으로 옹립하게 되는 사건들이 차례로 나옵니다. (나머지 족속들은 사울의 남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면서 한동안은 이스라엘 민족 내부가 약간의 내전상태에 처하기도 합니다.) 사무엘이 살아 있었다면 충분히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었던 모습같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비교가 몇가지 더 있습니다. 사울과 아들 요나단이 공공연하게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다윗도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쫓겨 다니기도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전쟁터로 보내서 죽게 만들려고 계략을 꾸몄던 이야기가 나중에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격전지 최선봉에 내보내는 계략을 꾸민 이야기로도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최소한 사무엘/열왕기에 드러난 다윗은 찬찬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부분도 많습니다. 사울이 저지른 여러 잘못들이나 인격적 결함들을 다윗도 따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울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다른 군주들과 비교해 크게 더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인물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사울에게는 엄하게 대하셨고, 다윗에게는 너그러우셨던 것일까요? 다윗이 저지른 죄들의 무게가 사울이 저지른 죄들의 무게보다 가벼웠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무엘 상 11장에는 사울이 왕이 되고 얼마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임을 얻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앞뒤로 연결해서 읽을 곳이 많습니다. 4절에 보면 길르앗 지역의 야베스 마을이 침략을 당했다는 소식에 백성들이 *크게* 울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사울이 살고 있던 곳은 요단강 서편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라는 곳이었고, 길르앗 야베스는 저 멀리 떨어진 요단강 건너편에 갓 지파와 므낫세 동편 지파의 경계 부근에 있었습니다. 주변 민족들의 침략이나 분쟁이 빈번했던 시기에 이 멀리 떨어진 두 마을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길래 기브아의 백성들이 그렇게 크게 울었던 것일까요? 

 

사무엘 상 31장과 역대상 10장에 보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죽게 되고, 그 시신이 블레셋 적진의 핵심 중의 핵심인  다곤성전에 걸려 수치를 당하고 있었을 때 - 이 야베스 사람들은 특공대를 조직해서 사울의 시신을 되찾아 와 야베스 땅에 장사를 지내줍니다. (삼상 31장) 아니 왜 베냐민 지파도 아닌 뜬금없는 요단강 건너편의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챙겼던 것일까요?

 

사사기 19~21장으로 돌아가 보면 베냐민 지파에 일어난 큰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큰 죄악으로 인해 지파가 멸절할 위기에 있었는데, 대를 잇기 위해 길르앗에서 처녀들을 납치해 오게 되는 사연이 나옵니다. 즉 사울 시대 베냐민 지파의 절반 정도는 모계 쪽이 길르앗 출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최소한 할머니 쪽 친척들이 있는 고향의 환란 소식을 듣고 큰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 사건으로 인해 비록 공식적인 지파는 달라졌더라도 베냐민의 뿌리는 (최소한 반은) 그쪽에 있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어쨌든 이 야베스 전투에서 사울이 승리를 거두면서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으로서 인정을 받게됩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낸 사울을 야베스의 아들로 내심 자랑스러워 했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사울이 죽었을 때 시신을 수습해 오면서 끝까지 은혜를 갚는, 이 훈훈한 사건은 사실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위험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 이후 처음엔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은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고 둘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삼하 2장) 

 

이럴 때 사울의 정통을 므낫세 혹은 갓 지파 소속이면서 베냐민 지파와 긴밀한 야베스인들이 지켜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다윗에게 신경이 쓰일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에 대해 다윗은 통큰 포용을 통해 상당한 정치력을 보여줍니다. (삼하 2장 5~7절) 물론 야베스 사람들이 눈치가 빨랐다면 다윗이 한 말이 ("너희들의 왕 사울은 죽었고, 나는 유다의 왕이 되었다.") 무슨 뜻인지 잘 알았을 겁니다. 이후에도 다윗은 비록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 했었더라도,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끝까지 사울 가문과 전통을 승계한다는 메세지를 계속 보여 주었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을 다시 찾아왔다든지, 요나단의 아들을 왕의 식탁에 합석하게 했다든지 등)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이후 이스라엘이 갈라질 때 뜻밖에도 사울을 낳은 베냐민 지파가 다윗의 유다 지파에 동참하여 남유다에 남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인가하고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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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9편을 시작으로 역사서와 시편이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시편 59편을 읽을 때 개역에서 '저희'라고 지칭하는 '그들, they/them'이 과연 누구였을까요? 이 시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 사울이 사람들을 보냈을 때'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죽이러 온 사람들을 지칭하기보다는 그 뒤에서 사울을 부추겨 이런 공격을 모의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대략 사무엘상 19장의 사건과 연결이 되는 듯 한데, 이 시편 가사대로라면 사울 혼자 다윗을 죽이려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인물들이 다윗을 위협하고 모함했던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줄 때에도 자세히 읽어보면, 다윗은 사울을 원망하기보다는 사울 주변의 세력이 사울 왕을 부추겼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9, 26:19) 이상하게도, 다윗은 사울을 무서워하여 도망다니긴 했어도, 그를 증오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울의 마음에 든 병을 돌보기 위해 늘 사울의 곁에 있어야 했던 다윗은 아마도 누구보다도 사울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성경에선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였다고 이야기하지만, rising star였던 다윗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비단 사울뿐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소설적 상상력을 빌려본다면 사울 왕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뒤틀리게 했던 18장의 백성들의 노래("수천 대 수만")도 이들이 대중들을 선동한 계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와 비슷하게도 시기, 군중, 선동이 버무려진 사건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 입성("호산나!")과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심판 때에도 있었습니다. (마 27:15-26, 눅 23:1-25, 요 19:1-16) 아마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윗의 영광과 이어진 고난, 그 와중에 찢어졌던 다윗의 마음을 떠올렸던가 봅니다. 마지막 말씀인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바로 다윗의 시편 22편에서 끌어온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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