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9편을 시작으로 역사서와 시편이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시편 59편을 읽을 때 개역에서 '저희'라고 지칭하는 '그들, they/them'이 과연 누구였을까요? 이 시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 사울이 사람들을 보냈을 때'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죽이러 온 사람들을 지칭하기보다는 그 뒤에서 사울을 부추겨 이런 공격을 모의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대략 사무엘상 19장의 사건과 연결이 되는 듯 한데, 이 시편 가사대로라면 사울 혼자 다윗을 죽이려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인물들이 다윗을 위협하고 모함했던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줄 때에도 자세히 읽어보면, 다윗은 사울을 원망하기보다는 사울 주변의 세력이 사울 왕을 부추겼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9, 26:19) 이상하게도, 다윗은 사울을 무서워하여 도망다니긴 했어도, 그를 증오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울의 마음에 든 병을 돌보기 위해 늘 사울의 곁에 있어야 했던 다윗은 아마도 누구보다도 사울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성경에선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였다고 이야기하지만, rising star였던 다윗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비단 사울뿐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소설적 상상력을 빌려본다면 사울 왕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뒤틀리게 했던 18장의 백성들의 노래("수천 대 수만")도 이들이 대중들을 선동한 계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와 비슷하게도 시기, 군중, 선동이 버무려진 사건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 입성("호산나!")과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심판 때에도 있었습니다. (마 27:15-26, 눅 23:1-25, 요 19:1-16) 아마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윗의 영광과 이어진 고난, 그 와중에 찢어졌던 다윗의 마음을 떠올렸던가 봅니다. 마지막 말씀인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바로 다윗의 시편 22편에서 끌어온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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