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를 생각하면 우리는 모세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주로 떠올립니다. 그야말로 '난세'를 체험 중인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은 탁월한 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영웅들의 삶을 보며 우리의 신앙의 모범으로 삼는 것이 전통적인 성경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조금 더 세심하게 읽어보면 사실 성경에는 유명한 영웅들 말고도 그저 한두 번 이름이 언급되고 마는 사람들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 '사소한' 이름들은 우리들은 잘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기록하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십니다.


이번 주에는 출애굽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습니다. 36장 1~2절에는 '브사렐'과 '오홀리압'이라는 낯선 이름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요즘으로 치면 탁월한 디자이너요, 엔지니어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개역 성경에서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긴 이름으로 소개된 사람들이 그들을 도웁니다. NIV에서는 'every skilled person',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에서는 '기술/재주있는 사람'으로도 번역되었지요. 36장 8절에는 '일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 /세공인'들도 나오고, 38장 21절에는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예산을 짜고 계수를 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물론 이 사람은 유력한 제사장 가문의 아들이긴 했지만, 요즘으로 친다면 성막 건설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수많은 백성들이 기꺼이 성막을 위해 예물을 가져왔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구심점이 되었던 성막과 언약궤는 이런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성경에 얼핏 지겨울 정도로 규격이나 모양, 재료들을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편으로는 거룩함(=구별됨)을 정확하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세심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수고를 다 기억해 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개역판에는 '그'로 나오지만, 영어 번역에는 'They'로 나오는 어떤 사람들은 36장 18절에 나오는 놋 갈고리를 만들었을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막에 세울 널판지를 만들기도 했을겁니다. (36:20-25) 제사장이 입는 옷에 붙이는 작은 장식을 만든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39:25-26) 모두가 아는 유명인사는 아니더라도 이래봬도 우리 할아버지가 성막에 그릇을 만든 사람이야! 하는 자긍심을 후손들은 가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란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질본, CDC의 리더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지금 바로 눈으로 보고 삶으로 느끼고 있지요. 하지만 수많은 유튜브나 티브이, 기사들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이름없는 사람들의 헌신입니다. 10년, 20년이 지나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을 돌아볼 때 신문에 한 줄 나오지 않은 우리 친구와 이웃, 이름도 모르는 어떤 친절한 사람들을 기억할 겁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의 수고를 기록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당시를 살아내었던 이런 이름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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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마가복음 통독을 할 때 새롭게 발견한 구절들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 1장 1절에 대해 또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의 시작'. 이 짧은 구절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는지 참 놀랍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모든 복음서들은 예수님 승천 후 최소한 30여 년이 지나고서야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기억과 마음 속에 남아있던 가르침과 일화들이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지요. 아마도, 예수님이 금방 돌아오실 것이라 생각하고 굳이 기록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같았으면 인스타나 유튜브 라이브로 일거수일투족을 쫒아다니면서 기록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러나 교회의 성장과 함께 그 이야기들을 들을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숫자로도, 지역적으로도 급성장을 이루었기에 예수님에 대한 '증언'(Testament)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을테지요. 사실 더 큰 문제는, 그 이야기들을 전해줄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고, 많은 수가 처형을 당해 순교하였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죽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바이러스 문제로 도쿄올림픽에 대해서도 열리네 마네 여러 뉴스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1988년, 약 30여년 전에 대한민국에선 큰 이벤트가 있었지요. 서른 살이 안된 분들은 그 올림픽은 하이라이트나 다큐멘터리, 이런 저런 영상이나 기사들을 보고 그런 큰 행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울 올림픽'이라는  주제를 그 당시를 살았던 분들에게 던져 준다면, 몇시간이고 저마다의 크고 작은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 이야기하실 수 있을겁니다. 생각해보면 공식적인 자료로 남아 있는 수많은 사진들과 필름들 이외에도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거리와 사건들이 있었던가요! 그러나 그런 자료들이라도 있으면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내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까맣게 잊었던 정말 많은 소소한 이야기와 감정들과 추억들이 소환됩니다. 


마가복음서가 쓰여질 즈음에 이르러서는 여러 신앙공동체에서 다른 기록들도 쓰여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보존해야겠다는 마음이 다 들었었겠지요. 이런 여러 단편적인 자료들이 모여서 차례로 마태복음, 누가복음 등이 쓰여지고, 이보다 훨씬 뒤에 사도요한의 인생 말엽에 그의 기억들이 요한복음으로 정리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복음서를 읽을 때에는 복음서의 한 구절, 한 에피소드 각각이 소환하는 그 증언자의 풍성한 기억을 함께 재구성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달해 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사람은 그가 가진 수많은 기억 중에 왜 그 에피소드를 기억하게 되었을까. 왜 복음서의 저자들은 그 수많은 증인들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이 이야기들을 추려서 정리하게 되었을까.  


마가복음의 첫 문장은 '기쁜 소식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전에는 이 말이 단순히 바로 다음에 나오는 '세례요한 이야기가 예수님 사역의 시작이다'라는 정도로만 이해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큰 의미들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가공동체가 지금 막 기록하는 이야기들은 앞으로 줄줄이 나올 기쁜 소식에 대한 증언들의 시작이라는 말로도 들리고, 복음서가 쓰이고 나서 세계 곳곳에서 2000여년동안 지속되고 있는 기쁜 소식의 증거와 전파 운동의 시작이라는 말로도 들립니다. 어떤 해석이든간에, 이 복음서에 실린 한 문장 한 문장의 무게는 참 남다른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다고들 하십니다. Get to the point, 바로 그냥 내지르는 복음의 핵심이 날것으로 느껴진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뼈대와 같은 복음을 읽고 거기에 살을 붙이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우리 독자들의 몫입니다. 지금 통독 프로그램을 하고 있지만, 사실 하루에 몇 장을 읽었는가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 겁니다. 쭉 읽어나갈 복음서 가운데서 '나'의 삶을 예수님의 증인으로 성장시켜줄 귀한 보화와 같은 구절, 인물, 사건들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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