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11장에는 사울이 왕이 되고 얼마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임을 얻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앞뒤로 연결해서 읽을 곳이 많습니다. 4절에 보면 길르앗 지역의 야베스 마을이 침략을 당했다는 소식에 백성들이 *크게* 울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사울이 살고 있던 곳은 요단강 서편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라는 곳이었고, 길르앗 야베스는 저 멀리 떨어진 요단강 건너편에 갓 지파와 므낫세 동편 지파의 경계 부근에 있었습니다. 주변 민족들의 침략이나 분쟁이 빈번했던 시기에 이 멀리 떨어진 두 마을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길래 기브아의 백성들이 그렇게 크게 울었던 것일까요? 

 

사무엘 상 31장과 역대상 10장에 보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죽게 되고, 그 시신이 블레셋 적진의 핵심 중의 핵심인  다곤성전에 걸려 수치를 당하고 있었을 때 - 이 야베스 사람들은 특공대를 조직해서 사울의 시신을 되찾아 와 야베스 땅에 장사를 지내줍니다. (삼상 31장) 아니 왜 베냐민 지파도 아닌 뜬금없는 요단강 건너편의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챙겼던 것일까요?

 

사사기 19~21장으로 돌아가 보면 베냐민 지파에 일어난 큰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큰 죄악으로 인해 지파가 멸절할 위기에 있었는데, 대를 잇기 위해 길르앗에서 처녀들을 납치해 오게 되는 사연이 나옵니다. 즉 사울 시대 베냐민 지파의 절반 정도는 모계 쪽이 길르앗 출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최소한 할머니 쪽 친척들이 있는 고향의 환란 소식을 듣고 큰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 사건으로 인해 비록 공식적인 지파는 달라졌더라도 베냐민의 뿌리는 (최소한 반은) 그쪽에 있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어쨌든 이 야베스 전투에서 사울이 승리를 거두면서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으로서 인정을 받게됩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낸 사울을 야베스의 아들로 내심 자랑스러워 했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사울이 죽었을 때 시신을 수습해 오면서 끝까지 은혜를 갚는, 이 훈훈한 사건은 사실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위험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 이후 처음엔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은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고 둘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삼하 2장) 

 

이럴 때 사울의 정통을 므낫세 혹은 갓 지파 소속이면서 베냐민 지파와 긴밀한 야베스인들이 지켜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다윗에게 신경이 쓰일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에 대해 다윗은 통큰 포용을 통해 상당한 정치력을 보여줍니다. (삼하 2장 5~7절) 물론 야베스 사람들이 눈치가 빨랐다면 다윗이 한 말이 ("너희들의 왕 사울은 죽었고, 나는 유다의 왕이 되었다.") 무슨 뜻인지 잘 알았을 겁니다. 이후에도 다윗은 비록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 했었더라도,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끝까지 사울 가문과 전통을 승계한다는 메세지를 계속 보여 주었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을 다시 찾아왔다든지, 요나단의 아들을 왕의 식탁에 합석하게 했다든지 등)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이후 이스라엘이 갈라질 때 뜻밖에도 사울을 낳은 베냐민 지파가 다윗의 유다 지파에 동참하여 남유다에 남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인가하고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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