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박 덩굴에 대하여 화낼 만한 이유가 있느냐?” “예, 있습니다. 내가 죽고 싶을 정도로 화낼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 (요나 4:9)
요나의 마지막 대사에 느낌표(!)가 붙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기 뜻대로는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겪으면 화가 나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요나서는 이 이후에 요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요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따로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그럼 요나는 욥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결국 마음 속으로 받아들였을까요? 아니면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서운하고 분한 마음을 풀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생각들이 연결이 됩니다.
이 요나의 마음을 찰떡같이 비유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일제시대 때 도쿄에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40일만에 망할거라고 외쳤는데 일본인들이 갑자기 회개해서 결국 아무일 없이 일본제국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바라보는 독립운동가의 마음이라고요. 요나에게 본문의 시든 박 덩굴은 영어속담으로 "straw that broke the camel's back"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요나의 마음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과 원수지거나 상처받은 것이 평생 죽을 때까지 가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에게도 화가 났거나 서운했거나 상처받았거나 삐졌거나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는 이들도 생기고, 하나님과 평생 좀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도 하나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욥기에서 욥과 친구들 사이의 대화에서 보았듯이 '옳은'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그 옳은 말들이 더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옳은 것을 알기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에게 미안해 하지 않는 분이실까요? 물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옳은' 일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미안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옳은 일을 하시기 위해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실 것이다...라는 추측도 해 봅니다. 하나님께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부드러운 바람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욥에게는 위엄으로 나타나셔서 깨우쳐 주십니다. 바울에게는 너 할 일을 다 마치고 오라, 네 은혜가 족하다라고 타일러 주십니다. 그리고 요나에게는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그러나 요나가 그 마음을 열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수많은 이유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닫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사순절 기간을 지나가고 있는데,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에서 제물되심에 대한 묵상을 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제물로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성경에선 예수님이 화목제로서의 역할도 감당하신 것이라고 분명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과 다시 친해지기 위한 제물. 다른 제사에선 제물로 바쳐진 것들은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향하지만, 이 제사는 하나님을 기쁘게 만든 제물을 다시 가족, 친구, 공동체에게 나누어 주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이렇게 제사/예배는 늘 쌍방적인 행위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준비를 할 때 하나님도 예배를 맞을 준비를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마음이 상한 이 세상의 수많은 요나를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화목제의 제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원래 구약 때 제물은 사람들이 준비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지 않았던가요?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인물 좋고 성품 좋은 사람으로 고르고 골라서 예수님을 제물로 선택한 것이 아니죠. 제물을 준비한 쪽은 하나님이십니다. 자기의 아들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기억할 때,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을 감격과 감사로 떠올립니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밀어 주신 화해의 손길 또한 기억하고 마주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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