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의 죄'는 왕상 12:28-31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금송아지... 출애굽 때 아론이 저질렀던 죄악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를 읽을 때 함께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실망하고 화를 내시기 시작한 지점이 바로 이 금송아지 사건부터입니다. 금송아지는 정확하게 말하면 십계명의 1조에 나오는 '다른 신'이라기 보다는 2조에 나오는 '형상'에 해당하는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사람의 손으로 만든 '형상'에 가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정말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면 굉장히 비슷한 것 같은 아론의 죄와 여로보암의 죄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론이 송아지 상을 만든 것은, 위에 말한 십계명을 미처 받기 전에 저지른 '몰라서 지은' 죄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발칙하게도 "이것이 이집트에서 우리를 구원해 낸 그 신이다!"라는 선언을 한 것은 아론이 아니고 백성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영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어야 하는 온당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아론의 죄악을 사면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도, 이런 큰 실수 후에 아론은 제 자리를 찾아 돌아와 초대 대제사장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죄는 그런 충동적, 일회성 실수가 아니고 몇 단계가 더 깊은 레벨에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나라를 세우고 취한 일련의 종교적 조치들이 있습니다. 벧엘과 단에 자체적인 예배처소를 만들고, 새로운 제사장들을 세우고, 새 국가적 절기도 정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로보암은 굉장히 치밀하게 하나님의 유사품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로보암은 '궁리를 한 끝에(새번역) / 보좌관들과 의논한 끝에(현대인) / 계획하고(개역)' 금송아지 상들을 만들고, 본인의 입으로 '이집트에서 우리를 구원해 낸 신이다!'라고 말하며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갔습니다. 게다가 굳이 그 금송아지 중 하나를 사사기 때부터 대대로 심각한 우상숭배로 물든(삿 18장) 단이라는 성읍에 가져다 놓습니다.
또 원래는 북이스라엘 전역에 이미 레위인들이 배치되어 하나님을 예배하고 율법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제사장직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해 버립니다. 결국 이들은 남유다로 망명하게 되고 (대하 11:13-16), 북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은 선지자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전환됩니다. 이렇게 어중이 떠중이로 돈만 내면 세워진 (대하 13:9) 북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나중에 선지자들의 신랄한 비판에 놓이게 됩니다. (호 8:11-13)
마지막으로, 여로보암이 '자기 마음대로' 세운 새 절기는 이스라엘 3대 절기 중의 하나인 초막절을 대체한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에게는 일곱째 달 보름에 초막절 제사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레 12:33-34) 여로보암은 그것을 무시하고 그보다 한 달 후인 여덟째 달 보름에 새로 명절을 정했습니다. 이 초막절은 근본적으로 광야생활을 기억하는 것이 본질이었지만, 마침 이스라엘의 기후와 농경 일정상 이스라엘판 추수감사절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유다보다 조금 더 북쪽에 자리한 북이스라엘의 추수 시기는 7월이 아니고 8월이라, 새 추수감사절의 시기를 그만큼 늦추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초막을 짓고 광야에서 고생했던 삶을 돌아보는 초막절의 본질을 경시하고 추수와 축제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위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상의 종류에는 바알, 아세라 등과 같은 이방신들도 있지만, 금송아지 같은 유사품도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방신들과 대적하며 영웅적인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도 있지만, 열왕기 아래에 흐르는 거대한 흐름은 북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 줄줄이 완전히 거짓 하나님을 믿었다는 뼈아픈 반성이 있습니다. 예후와 같은 왕도 바알 신앙을 뿌리를 뽑는 훌륭한 일을 하였지만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를 지었다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방신에 미혹되어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면, 금송아지같은 거짓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온갖 우상들이 판을 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번영과 편의, 욕망을 위해 조작된 거짓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겸허히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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