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에서는 남유다의 왕들은 '다윗의 길을 따랐는가'로 평가하고,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로보암의 죄악을 따랐는가'로 평가합니다. 다윗의 길은 무엇이고 여로보암의 죄악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간단하게는 하나님을 잘 믿었는가 하는 기준과,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섬겼는가 하는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이 '다윗의 길'에 대해 조금 더 생각을 이어보려고 합니다. (여로보암의 죄악은 다음에...) 왕상 9:4에는 '내가 네게 명한 것을 실천하고, 내가 네게 준 율례와 규례를 온전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지켜라.'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온전한 마음' (Integrity of heart)이라는 부분이 특별히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계속 율법주의자들과 싸웠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들에 대한 평가 중, '... 이런 저런 것들은 잘 했으나, 산당/우상은 없애지 못하였더라'라는 표현이 종종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다윗도 기브아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고 (성전이 없을 때였었긴 했지만), 솔로몬도 성전을 짓기 전에는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성전을 짓고 나서도 말년에는 아내들을 위해 이방신들의 산당들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도 산당 이야기가 자주 나오지요. 우상에 관한 문제야 따로 설명이 필요없지만, 이 '산당'은 생각보다 복잡한 배경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산당 중에는 이방신들을 섬기는 산당들도 있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높은 산 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산당들도 있었습니다. 이  후자의 산당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통합되지 못하고 각 지역의 토착 제사장들에 의해 (제멋대로) 운영되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분권형/ 지역 밀착형 예배처소이지만, 나쁘게 보면 예루살렘 성전과는 따로 제각각 노는 그룹들이었던 것입니다. 즉, 산당이 성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종교적 권위가 지방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열왕기 사가들에게는 다윗이 비록 성전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워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은 것이 보기 좋았던가 봅니다. 이것은 온 나라를 정치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로 묶어내 여호와 신앙 안의 통합을 이루어야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다윗 후대의 왕들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유지하고 율법들을 잘 지키는 왕들이 있었을런지는 모르지만, 다윗이 처음 생각했던 '통합'까지는 잘 이루어 내지 못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저 후대에 이르러 히스기야 왕 (왕하 18:3-5 )과 요시야 왕 (왕하 23:8-9) 까지 와서야, 이 산당들과 지방 제사장들에 대한 처리가 비로소 이루어지게 됩니다. 

 

역사적 맥락의 관점에서 다윗의 길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경건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리더로서 통합과 일치(Unity)를 이루어내는 것까지도 추구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현대 사회는 다양성, 개별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 통합이나 일치라는 말이 왠지 독재나 구시대적 전체주의를 떠올리는 느낌이 있어 이러한 해석에 불편한 자락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홀로 신앙이나 분열적 신앙이 대안이 될 수 없음도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요즘같이 진정한 리더에 대해 깊은 열망이 있는 때에, 우리는 어떻게 다윗의 길을 따라갈 것인가 계속 고민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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